고전적 물질상에 대한 고찰
뉴턴 역학과 마스크 웰의 두 지주로 하는 전기기학은 19세기 말까지 많은 분야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면서도 원리에 관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가장 원리적인 문제는 물질의 안정성에 관한 것이다. 원자론이 확립되고 있는 가운데 원자끼리 결합하여 안정적인 분자를 형성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1890년에는 푸앵카레가 만유인력의 3차 문제가 해석적으로 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궤도가 매우 복잡해진다고 밝혔기 때문에 원자가 쿨롱력과 같은 단순한 인력에 의해 운동하면서 안정적인 분자 결합을 이룰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 문제는 원자세계에서 볼 수 있는 질서를 실감할 수 있는 현대에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주사형 전자현미경은 금속 표면에 원자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또 오제효과로 불리는 현상을 이용하면 표면의 원자 그림자에 가려 있는 2층, 3층의 원자 형태까지 볼 수 있다. 게다가 유기화학에서 친숙한 벤젠고리가 정말로 육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왜 이렇게 정연하게 배치되는 것일까? 적어도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역학적 법칙이 원격력이 작용하는 뉴턴 역학의 질점계 세계의 것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될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물리학자에게 결정이나 분자구조의 안전성은 아직 과학적인 논의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규명되지 않았으나 1911년에는 해답을 구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마스덴의 실험 결과를 기초로 러더퍼드가 고안한 원자 모형은 중심에 원자의 대부분의 질량을 담당하는 작은 원자핵이 존재하고 그 주위에 가벼운 전자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모형은 태양계를 방불케 하고 직관적으로는 알기 쉽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즉 태양계 내부 행성과 마찬가지로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따라 반드시 전자파가 방출돼 전자는 에너지를 잃게 된다. 정확히 지구의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이 대기와의 마찰로 에너지를 잃어 낙하해 오는(다수는 대기중에서 다 타버리지만 그 중에는 지표까지 떨어져 피혜가 되는 것도 있다) 것처럼 전자도 원자핵까지 침체해 갈 것이다. 당연히 원자구조는 무너지고 모든 물질은 온데간데 없이 뭉개진다.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를 고전 물리학 속에서는 찾지 못했다. 세기가 바뀌면서 과학자들이 고민한 또 다른 문제는 방사 이론의 파탄이다. 제철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금속을 고온으로 가열하면 처음에는 연한 붉은색을 띠지만 온도가 오르는 것에 따라 희게 빛난다. 이때 금속이 내는 빛의 스펙트럼(빛의 파장과 강도의 관계)을 밝히는 것은 산업적 응용에서도 중요한 과제였다.그런데 당시 물리학의 지견을 조합한 방사이론은 실험적으로 얻어진 스펙트럼을 재현할 수 없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빈은 일반적인 방사 이론에 반실험적인 방법론을 섞어 단파장에서 실험과 일치하는 방사 공식을 만들었지만 장파장에서는 실험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생겼다. 반면 레일리는 전자기학과 열역학의 엄격한 응용을 통해 빈의 것과는 다른 공식을 얻었는데 이는 장파장만으로 실험과 일치할 뿐 아니라 단파장에서는 방사되는 에너지가 무한해진다는 근본적인 난점을 안고 있었다. 뉴턴이 그려낸 물질세계는 지극히 알기 쉬운 명쾌함을 가지고 있다. 공허한 통으로서의 공간 내부에 고립된 원자가 존재하고 각 원자 간에(그 기원이 분명하지 않은) 힘이 작용함으로써 한결같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운동법칙에 따라 원자가 운동한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힘의 기원으로 꼭 직관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전자장(에테르)을 도입했지만 그래도 공간 안에 존재하며 시간과 함께 운동하는 원자라는 알기 쉬운 물질상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물질상은 이제 20세기 초 과학혁명을 통해 허무하게 무너지게 된다. 전기 양자론의 발전은 고전적인 물질상에 최초의 쐐기를 박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고전 물리학의 신봉자였던 플랑크다. 바야흐로 세기가 바뀌는 1900년 그는 레일리의 공식과 빈의 공식을 결합해 실험과 일치하는 식(프랑크의 방사 공식)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편리한 공식을 만들었을 뿐이다. 플랑크의 업적은 통계역학적으로 그 물리적인 의미를 밝힌 점이다. 즉, 진동수의 전자파를 흡수방출하면서 평형상태에 도달한 물체가 있을 때 전자장과 주고받는 에너지가 h の의 정수배가 되었다고 가정하면 플랭크의 방사공식이 통계역학의 기법에 기초하여 도출되는 것이다(h는 후에 플랭크 상수라 불리는 기본 정수이다). 플랑크 자신은 에너지가 이상적인 값이 되는 이유를 일절 설명하지 않고 마치 계산상의 편의적 조치인 것처럼 제시했는데, 이것이 고전적인 물질상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양자론의 시작이었다. 플랑크의 이론은 발표 초기에는 동시대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 이론이 가지는 의미를 최초로 명확하게 이해한 것은 당시 아직 특허국원이라는 입장의 일개의 아마츄어 물리학자에 지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이다. 기기적의 해로 불리는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론, 브라운 운동 논문과 함께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광양자론 논문을 발표한다. '빛의 발생과 변환에 관한 하나의 발견적 견지에 대하여' 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이 논문의 주장은 수학을 좀 더 풀어 도출한 것이 아니라 매우 명쾌한 물리적 직관에 기초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빈의 공식에서 열역학적인 관계식을 도출하였다. 그것이 희박한 용액의 식과 비슷한 형태가 된 것을 토대로 용액 안에 용질 입자가 떠 있는 것처럼 물질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빛(=전자파)이 에너지 hh 덩어리(양자)로서 공간 내에 존재하고 있다. "빛=입자" 라는 단순한 도식을 제창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빈의 공식이 성립되는 단파장 영역에서 빛이 마치 크기 h의 서로 독립적인 에너지 양자로 성립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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